나노수트(NanoSuit)는 직물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직물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블 매터(programmable matter)다. 제곱미터당 2억 4천만 개의 나노봇이 격자로 결합해 있고, 각 나노봇은 이웃한 여섯 개와의 결합 각도를 개별적으로 바꿀 수 있다. 각도가 바뀌면 전체 구조의 길이, 두께, 곡률이 바뀐다. 옷의 형태가 바뀐다는 건 결국 그 각도들의 합이 바뀐다는 뜻이다.
"우리는 옷을 만들지 않습니다. 옷이 되는 법을 나노봇에게 가르칠 뿐입니다."
서울 성수동 기반의 NANOFORGE 수석 엔지니어 정하람의 말이다. 그의 팀이 2056년 발표한 '분산 형상 합의 알고리즘'은 나노수트 상용화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그전까지 나노 직물은 중앙 제어기가 모든 나노봇에 명령을 보내는 방식이었고, 그래서 형태 전환에 40초 이상이 걸렸다. 정하람의 알고리즘은 나노봇들이 이웃끼리만 통신하며 전체 형태에 합의하게 만들었다. 전환 시간은 40초에서 0.8초로 줄었다.
전력은 Vol.02에서 다룬 솔라스킨이 해결했다. 나노수트 표면층에는 SOLARWEAVE의 페로브스카이트 광전지 레이어가 0.04mm 두께로 적층돼 있어, 형태 전환에 필요한 전력을 자체 조달한다. 두 기술이 만나면서 나노수트는 비로소 "충전기를 찾지 않아도 되는 옷"이 됐다.